가구에 친환경과 인류애를 接木시키다
국제 무대에서도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주)인아트’
엄 대표의 감각과 추진력, 한 대표의 휴먼경영이 사업 성장의 기폭제
(주)인아트 한경석 대표
‘인아트의 인이 사람 人의 의미라는 네이밍에 모두 박수를 보낸다. 인류애를 지향하는 人아트 네이밍은 가구를 단순히 집안의 붙박이 물건이 아닌 사람의 환경으로 인식을 전환한 쉽고 품격있는 브랜드가 되었다.’
자연을 닮은 가구,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다. ‘人아트’는 가구의 주재료인 원목이 주는 기능적인 우아함이 독보적이다. 사람, 그리고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인아트의 철학이 식탁부터 사무공간, 잠자리까지 24시간 우리 삶의 배경이 된다. 인아트의 초록 잔디와 재잘거리는 여고생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하모니가 근사했던 인아트의 체험 데이. 순수하고 건강한 아이들의 모습이 인아트 원목 가구의 분위기와 많이 닮아 있었다. 순간을 연출이라도 하듯이 무더위를 날려버리는 소나기까지 찬조 출연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단체 사진 속에서 아이들 속에 파묻힌 한 대표가 여고생 단 한 명에게라도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면 그 날 인아트의 사회적 공헌도 일조를 한 셈이다.
1996년 자본금 500만 원으로 가구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다
넓은 초록 잔디를 지나 탁 트인 매장 안에 작은 여인, 후광을 등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작은 몸으로 무거운 원목 의자를 번쩍 들어 올리는 한 대표의 저력이 원목 가구와 함께 한 28년의 시간을 대변하고 있었다. 당진이 고향인 한 대표는 청양이 고향인 엄태헌 대표와 인아트의 공동대표다. ‘시골’ 동네를 대변하는 지역출신들이지만 특별한 감각과 승부사 기질로 인아트를 일으켜 세웠다. 부부가 공동대표의 길을 걷는 건 양날의 검으로 과도한 일반화가 되어 있다. 하지만 두 부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을 극대화 시키면서, 28년 성장의 탑을 쌓아올렸다.
안방마님인 한 대표는 20대 초반 탑 항공사에서 근무한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미 우물 안 개구리의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엄 대표도 소품 무역상으로 조화를 중국, 필리핀에서 컨테이너로 들여와서 남대문 시장에 납품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 감각을 익혔다. 거시적으로 시장을 들여다보는 안목을 갖고 결혼 후에 본격적으로 가구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두 사람의 배경이 가구사업이라는 교집합을 낳았다. 부부는 부모에게 기댈 언덕이 없어 두 사람의 사회생활 경력과 열정이 자본이 되어 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1996년, 신도안 작은 조립식 건물에서 300만 원짜리 창고, 할부로 구입한 1톤 트럭이 청년 부부의 초기 자본이었다. 처음에는 타사의 가구를 가져와 유통하고 서서히 본인 디자인으로 가구를 만들어서 판매했다. 발로 뛴 노력의 결과가 행운을 낳으며 죽동 3000평 부지로 정착하기까지 28년이 걸렸다. 반지하에서 78평 타운하우스로 정주하기까지 수치의 증가가 인아트 성장의 본질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내적 성장은 산술적인 수치로 평가할 수 없다. 친환경을 가구 철학으로 시작한 인아트는 이제 특판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제2의 전환기를 준비하고 있다.
인아트가 서울 논현에도 매장이 있지만 대전 본사에 거점을 둔 건 한 대표가 전국 시장을 겨냥했던 이유다. 대전이 전국 물류의 중심으로 하루생활권으로 묶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어 과감하게 서울을 벗어나 대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업의 순간순간은 선택과 집중, 결단으로 이어지듯이 대전에 둥지를 튼 것도 과감한 결단이었지만 주요했다. 평소 한 대표의 경영철학인 긴 고민의 시간보다 실행하면서 답을 찾는 경영방식의 모태는 처음 사업 시작 시점과 맥을 같이 한다. 엄 대표의 감각과 추진력, 한 대표의 휴먼경영이 사업의 성장에 기폭제가 되었다. 얼핏 부부의 역할이 치환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틀에 넣을 수 있지만, 각자의 역량을 결집하는 방식의 비즈니스는 결국 성공했다.
물론 성장 가도를 가로막는 요인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2년 전, 800평 연산공장이 화재로 30억의 손실을 보며 망연자실 한 채 바닥에서 일어났다.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에게 화재 현장을 보여주면서 다시 바닥에서 회복하는 인아트를 피부로 경험하게 했다. ‘현장이 답’이라는 말은 성장의 현장, 내리막의 현장 모두 통용되는 말이다. 아들에게 현장을 경험하게 했다. 죽동으로 이전을 준비하던 때 갑작스런 세무조사를 당하기도 했다. 인아트의 성장에 제동을 걸고 싶은 누군가의 방해였다고 합리적인 의심을 했지만, 어차피 인생사는 경계를 부수고 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투명한 경영을 했기에 자신할 수 있었지만 한 달 내내 한 대표의 사무실에서 영수증 하나까지 찾아내는 현장에서 한 대표는 세상사 쓴맛을 통렬히 맛보았다. 세금 수십 억이라는 액면가 금액보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암이라는 불청객과 만나게 되는 절박한 기로에 서 보기도 했다. 이제 완치 판정을 받았고 건물 화재도, 세무조사도, 암 치료도 그녀에게는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손실이 아닌 수익을 내는 장부에 기재되었다.
인아트, 명실공히 원목가구의 대명사
인아트가 원목가구의 대명사였던 시절은 ‘앤디시리즈’로부터 시작됐다. 2003년에는 전국적으로 인아트의 이름을 알린 첫 번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브랜드 ANDY가 탄생한다. 엄 대표의 영어식 이름인 앤디를 바탕으로 네이밍을 한 앤디시리즈는 좌식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 습성에서 착안했다. 엄 대표가 고무나무로 33센티 낮은 탁자를 디자인하고 시중에 내놓았다. 거실에서도 소파에 앉지 않은 사람들의 정서를 겨냥한 탁자는 그야말로 가구 시장에서 블루칩이 되었다.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성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목가구의 혁신 아이콘으로 등장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야밤에도 공장 불이 꺼지지 않았고 손, 발 모두를 보태도 일손이 모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시절이었다. 인생이 운과 노력이 전부라지만 그 운이 노력의 귀결점이었다. 백화점 50군데 매장을 운영하면서 성장 가도에 불이 붙었지만 반면에 다시 재정비의 전환점에 섰다. 영업매출은 많았지만, 비례해서 지출도 많아 수익구조를 내실과 외연 확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보면 내실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는 때라는 수치가 나왔다. 외연의 확장보다 내실을 기하는 혁신의 시점에 백화점 4개, 논현, 연산, 김해, 죽전 직영매장만 남기고 기타 백화점에서 매장을 철수했다.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은 당연히 감수해야 했지만, 결단이 적중해서 이후 코로나 사태를 맞으면서 미리 거품을 뺀 구조가 시대적인 흐름에 적중했다. 준비된 자에게는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듯이 미리 슬림한 구조로 사업의 구도를 이동시킨 후라 코로나의 암울한 터널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구만큼 경기의 흐름과 시대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아이템이 없다. 한번 구매하면 사용 수명이 기본 10년이며 생필품이 아니기 때문에 위기의 시대에는 가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다. 미리 구조를 조정한 후에 맞이한 직격탄이라 큰 부상 없이 빠져나와 회복 할 수 있었다.
인아트의 인이 사람 人의 의미라는 네이밍에 모두 박수를 보낸다. 인류애를 지향하는 人아트 네이밍은 가구를 단순히 집안의 붙박이 물건이 아닌 사람의 환경으로 인식을 전환한 쉽고 품격 있는 브랜드가 되었다.
크고 작은 각각의 돌들이 모여 성장의 탑을 쌓다
한 대표가 결혼 후 4년간 3남매 낳느라 집에서 독박육아를 하고 매장에 나왔을 때는 질서가 잡히지 않은 현장이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고민을 안고 한 대표는 하나씩 개선해나갔다. 처음 브랜드 없는 원목 위주의 앤틱가구를 마진 붙여서 파는 1차원적인 경영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때, 한 대표는 디자인 감각과 비즈니스를 관통하는 추진력을 갖고 있어서 “우리 제품은 우리가 디자인한 제품으로 시장에 내어놓고 평가받자.”는 목표설정 후에 엄 대표가 앤디시리즈 탁자를 내어놓았다.
이름처럼 모던하고 기능까지 보완한 시리즈로 광주의 백화점에서는 줄 서서 구매하는 진풍경을 낳기도 했다. 사업은 탄력을 받고 국내외 가구전시회에 수시로 출장을 다니면서 선진화된 감각을 익히고 비즈니스 역량을 키워나갔다. 한 대표는 외국 굴지 회사들의 오너를 직접 맨투맨으로 만나면서 국내 독점 론칭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작은 거인이라는 닉네임의 옷이 제법 잘 어울리며 국내 뿐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도 인아트는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았다. 파리, 밀라노, 상해 등 굵직한 가구 전시회를 다니며 사업에 몰두하느라 해당 국가를 여행하는 여유도 누리지 못했다. 지금의 규모가 비행기가 이륙할 때 전속력을 내듯이 어느 시점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시간을 담보로 한다. 헛수고 같던 그 시간이 모여 지금의 인아트를 만들었다.
이제는 특판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상승의 포물선을
인아트는 가구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전통방식의 모회사 외에도 인테리어 회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리빙연구소에서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멋스런 일상이 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쇄신을 거듭한다. 탁자와 의자로 시작했던 아이템이 생활가구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고 침구류 주방류까지 확대하고 집안의 모든 가구와 집기들을 다루게 되었다. 인테리어 까지 확대되어 그간 소비자를 중심으로 판매를 이뤄왔다면 이제 특판으로 사업의 방향키를 돌려본다. 유통만 하는 것이 아닌 직접 디자인 하고 공장에서 제조를 할 수 있는 특판의 조건을 다 갖췄는데 그동안 특판에 집중하지 못했다. 회사 집무실, 관공서의 품격에 잘 어울리는 원목 가구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인아트는 현재 국내외 원목가구 브랜드와 함께, 건설사의 프리미엄 주문가구와 빌트인가구, 주방가구와 건자재까지, 건가구 분야의 생산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가정용가구 부문에서의 강력한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사무가구와 교육용 가구를 직접 생산하며, 정부조달 기업으로 다양한 정부기관과 공공기관, 교육기관을 위한 가구 납품과 시공을 병행하고 있다. 인아트는 엄격한 정부 정책과 기준에 맞춘 친환경 가구 공정을 지켜가고 있으며, 공정효율화와 친환경제품개발을 통해 우수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지켜나가는 조달납품기업이다. 인아트는 수많은 품질인증과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제조라인을 보유하여 직접 생산하며, 맞춤형 제품 개발을 통해 믿을 수 있는 품질의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현재 인아트는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 교육기관, 도서관 등 다양한 공간 맞춤형 주문제작 가구를 활발히 납품하고 있으며, 매년 높은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인아트는 국내외 다양한 현장에서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 자재 및 가구, 기획부터 PM까지, 전문 영역 간 시너지를 바탕으로 보다 진일보한 공간을 완성하고 있다. 아파트와 주거, 호스피탈리티(FF&E)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경계를 넘어선 차별화된 공간 솔루션 제공하고 있다.
원목의 세련되고 심플한 디자인, 내구성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인아트, 이제 기능성과 심미성을 겸비한 가구로 특판 시장에서 한 번 더 폭풍 성장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가구시장에도 반짝 유행하는 아이템들이 즐비하다. 한 대표는 원목이라는 친환경 소재로 방향키를 선회하지 않고 뚝심 있게 인아트를 이끌고 있다.
리빙디자인연구소 설립은 인아트를 한 층 더 성장시키면서 2008년 말레이시아 가구 박람회 한국 최초 디자인 어워드 수상, 2010년 싱가포르 가구 박람회 특별상 수상, 아시아 가구리더십 어워드 한국 대표 기업 선정 등 세계적으로 디자인력을 인정받았다. 영국, 미국, 일본 대표 디자이너 및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글로벌 다양성도 갖췄다.
한 대표는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다. 2014년 지역아동센터, 그룹홈에 1억 8000만 원 상당의 가구를 지원하기로 한 대전 유성구와 협약을 시작으로 매년 대전, 계룡, 논산의 지역 아동 센터와 복지시설 등에 해마다 가구를 무상 지원하고 있다. 여성 기업인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8년 원목가구로 외길을 걸었던 한 대표의 행보는 죽동 푸른 잔디가 깔린 전시장이 대변하고 있다. 가구를 일상의 도구가 아닌, 삶 그 자체로 품격을 높인 한 대표의 시간이 인아트를 ‘人아트’로 원목만큼 단단하게 견인하고 있다.
(주)인아트 한경석 대표
(주)이오디자인건축 대표
2013년 6월 유망중소기업 선정, 더숲 대표 자격
2017년 7월 대전시장상 수상
2019년 대통령상 포상
2021년 여성친화기업 재선정
2022년 7월 대전지방조달청장상 수상
2024년 7월 중소벤처부장관상 수상
現 충남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자문위원(2019~)
現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특별부회장(2022~)
現 대전여성경제인협회 부회장(2022~)
現 대전시민사랑협의회 이사
現 대전시민교향악단후원회이사
現 충남대학교 캡스톤디자인 협력위원(2023~)
2023년 북대전세무서 명예민원실장
출처 : 한국시민기자협회(http://www.civilrepor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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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에 친환경과 인류애를 接木시키다
국제 무대에서도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주)인아트’
엄 대표의 감각과 추진력, 한 대표의 휴먼경영이 사업 성장의 기폭제
(주)인아트 한경석 대표
‘인아트의 인이 사람 人의 의미라는 네이밍에 모두 박수를 보낸다. 인류애를 지향하는 人아트 네이밍은 가구를 단순히 집안의 붙박이 물건이 아닌 사람의 환경으로 인식을 전환한 쉽고 품격있는 브랜드가 되었다.’
자연을 닮은 가구,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다. ‘人아트’는 가구의 주재료인 원목이 주는 기능적인 우아함이 독보적이다. 사람, 그리고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인아트의 철학이 식탁부터 사무공간, 잠자리까지 24시간 우리 삶의 배경이 된다. 인아트의 초록 잔디와 재잘거리는 여고생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하모니가 근사했던 인아트의 체험 데이. 순수하고 건강한 아이들의 모습이 인아트 원목 가구의 분위기와 많이 닮아 있었다. 순간을 연출이라도 하듯이 무더위를 날려버리는 소나기까지 찬조 출연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단체 사진 속에서 아이들 속에 파묻힌 한 대표가 여고생 단 한 명에게라도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면 그 날 인아트의 사회적 공헌도 일조를 한 셈이다.
1996년 자본금 500만 원으로 가구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다
넓은 초록 잔디를 지나 탁 트인 매장 안에 작은 여인, 후광을 등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작은 몸으로 무거운 원목 의자를 번쩍 들어 올리는 한 대표의 저력이 원목 가구와 함께 한 28년의 시간을 대변하고 있었다. 당진이 고향인 한 대표는 청양이 고향인 엄태헌 대표와 인아트의 공동대표다. ‘시골’ 동네를 대변하는 지역출신들이지만 특별한 감각과 승부사 기질로 인아트를 일으켜 세웠다. 부부가 공동대표의 길을 걷는 건 양날의 검으로 과도한 일반화가 되어 있다. 하지만 두 부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을 극대화 시키면서, 28년 성장의 탑을 쌓아올렸다.
안방마님인 한 대표는 20대 초반 탑 항공사에서 근무한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미 우물 안 개구리의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엄 대표도 소품 무역상으로 조화를 중국, 필리핀에서 컨테이너로 들여와서 남대문 시장에 납품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 감각을 익혔다. 거시적으로 시장을 들여다보는 안목을 갖고 결혼 후에 본격적으로 가구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두 사람의 배경이 가구사업이라는 교집합을 낳았다. 부부는 부모에게 기댈 언덕이 없어 두 사람의 사회생활 경력과 열정이 자본이 되어 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1996년, 신도안 작은 조립식 건물에서 300만 원짜리 창고, 할부로 구입한 1톤 트럭이 청년 부부의 초기 자본이었다. 처음에는 타사의 가구를 가져와 유통하고 서서히 본인 디자인으로 가구를 만들어서 판매했다. 발로 뛴 노력의 결과가 행운을 낳으며 죽동 3000평 부지로 정착하기까지 28년이 걸렸다. 반지하에서 78평 타운하우스로 정주하기까지 수치의 증가가 인아트 성장의 본질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내적 성장은 산술적인 수치로 평가할 수 없다. 친환경을 가구 철학으로 시작한 인아트는 이제 특판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제2의 전환기를 준비하고 있다.
인아트가 서울 논현에도 매장이 있지만 대전 본사에 거점을 둔 건 한 대표가 전국 시장을 겨냥했던 이유다. 대전이 전국 물류의 중심으로 하루생활권으로 묶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어 과감하게 서울을 벗어나 대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업의 순간순간은 선택과 집중, 결단으로 이어지듯이 대전에 둥지를 튼 것도 과감한 결단이었지만 주요했다. 평소 한 대표의 경영철학인 긴 고민의 시간보다 실행하면서 답을 찾는 경영방식의 모태는 처음 사업 시작 시점과 맥을 같이 한다. 엄 대표의 감각과 추진력, 한 대표의 휴먼경영이 사업의 성장에 기폭제가 되었다. 얼핏 부부의 역할이 치환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틀에 넣을 수 있지만, 각자의 역량을 결집하는 방식의 비즈니스는 결국 성공했다.
물론 성장 가도를 가로막는 요인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2년 전, 800평 연산공장이 화재로 30억의 손실을 보며 망연자실 한 채 바닥에서 일어났다.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에게 화재 현장을 보여주면서 다시 바닥에서 회복하는 인아트를 피부로 경험하게 했다. ‘현장이 답’이라는 말은 성장의 현장, 내리막의 현장 모두 통용되는 말이다. 아들에게 현장을 경험하게 했다. 죽동으로 이전을 준비하던 때 갑작스런 세무조사를 당하기도 했다. 인아트의 성장에 제동을 걸고 싶은 누군가의 방해였다고 합리적인 의심을 했지만, 어차피 인생사는 경계를 부수고 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투명한 경영을 했기에 자신할 수 있었지만 한 달 내내 한 대표의 사무실에서 영수증 하나까지 찾아내는 현장에서 한 대표는 세상사 쓴맛을 통렬히 맛보았다. 세금 수십 억이라는 액면가 금액보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암이라는 불청객과 만나게 되는 절박한 기로에 서 보기도 했다. 이제 완치 판정을 받았고 건물 화재도, 세무조사도, 암 치료도 그녀에게는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손실이 아닌 수익을 내는 장부에 기재되었다.
인아트, 명실공히 원목가구의 대명사
인아트가 원목가구의 대명사였던 시절은 ‘앤디시리즈’로부터 시작됐다. 2003년에는 전국적으로 인아트의 이름을 알린 첫 번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브랜드 ANDY가 탄생한다. 엄 대표의 영어식 이름인 앤디를 바탕으로 네이밍을 한 앤디시리즈는 좌식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 습성에서 착안했다. 엄 대표가 고무나무로 33센티 낮은 탁자를 디자인하고 시중에 내놓았다. 거실에서도 소파에 앉지 않은 사람들의 정서를 겨냥한 탁자는 그야말로 가구 시장에서 블루칩이 되었다.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성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목가구의 혁신 아이콘으로 등장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야밤에도 공장 불이 꺼지지 않았고 손, 발 모두를 보태도 일손이 모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시절이었다. 인생이 운과 노력이 전부라지만 그 운이 노력의 귀결점이었다. 백화점 50군데 매장을 운영하면서 성장 가도에 불이 붙었지만 반면에 다시 재정비의 전환점에 섰다. 영업매출은 많았지만, 비례해서 지출도 많아 수익구조를 내실과 외연 확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보면 내실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는 때라는 수치가 나왔다. 외연의 확장보다 내실을 기하는 혁신의 시점에 백화점 4개, 논현, 연산, 김해, 죽전 직영매장만 남기고 기타 백화점에서 매장을 철수했다.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은 당연히 감수해야 했지만, 결단이 적중해서 이후 코로나 사태를 맞으면서 미리 거품을 뺀 구조가 시대적인 흐름에 적중했다. 준비된 자에게는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듯이 미리 슬림한 구조로 사업의 구도를 이동시킨 후라 코로나의 암울한 터널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구만큼 경기의 흐름과 시대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아이템이 없다. 한번 구매하면 사용 수명이 기본 10년이며 생필품이 아니기 때문에 위기의 시대에는 가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다. 미리 구조를 조정한 후에 맞이한 직격탄이라 큰 부상 없이 빠져나와 회복 할 수 있었다.
인아트의 인이 사람 人의 의미라는 네이밍에 모두 박수를 보낸다. 인류애를 지향하는 人아트 네이밍은 가구를 단순히 집안의 붙박이 물건이 아닌 사람의 환경으로 인식을 전환한 쉽고 품격 있는 브랜드가 되었다.
크고 작은 각각의 돌들이 모여 성장의 탑을 쌓다
한 대표가 결혼 후 4년간 3남매 낳느라 집에서 독박육아를 하고 매장에 나왔을 때는 질서가 잡히지 않은 현장이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고민을 안고 한 대표는 하나씩 개선해나갔다. 처음 브랜드 없는 원목 위주의 앤틱가구를 마진 붙여서 파는 1차원적인 경영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때, 한 대표는 디자인 감각과 비즈니스를 관통하는 추진력을 갖고 있어서 “우리 제품은 우리가 디자인한 제품으로 시장에 내어놓고 평가받자.”는 목표설정 후에 엄 대표가 앤디시리즈 탁자를 내어놓았다.
이름처럼 모던하고 기능까지 보완한 시리즈로 광주의 백화점에서는 줄 서서 구매하는 진풍경을 낳기도 했다. 사업은 탄력을 받고 국내외 가구전시회에 수시로 출장을 다니면서 선진화된 감각을 익히고 비즈니스 역량을 키워나갔다. 한 대표는 외국 굴지 회사들의 오너를 직접 맨투맨으로 만나면서 국내 독점 론칭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작은 거인이라는 닉네임의 옷이 제법 잘 어울리며 국내 뿐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도 인아트는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았다. 파리, 밀라노, 상해 등 굵직한 가구 전시회를 다니며 사업에 몰두하느라 해당 국가를 여행하는 여유도 누리지 못했다. 지금의 규모가 비행기가 이륙할 때 전속력을 내듯이 어느 시점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시간을 담보로 한다. 헛수고 같던 그 시간이 모여 지금의 인아트를 만들었다.
이제는 특판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상승의 포물선을
인아트는 가구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전통방식의 모회사 외에도 인테리어 회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리빙연구소에서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멋스런 일상이 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쇄신을 거듭한다. 탁자와 의자로 시작했던 아이템이 생활가구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고 침구류 주방류까지 확대하고 집안의 모든 가구와 집기들을 다루게 되었다. 인테리어 까지 확대되어 그간 소비자를 중심으로 판매를 이뤄왔다면 이제 특판으로 사업의 방향키를 돌려본다. 유통만 하는 것이 아닌 직접 디자인 하고 공장에서 제조를 할 수 있는 특판의 조건을 다 갖췄는데 그동안 특판에 집중하지 못했다. 회사 집무실, 관공서의 품격에 잘 어울리는 원목 가구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인아트는 현재 국내외 원목가구 브랜드와 함께, 건설사의 프리미엄 주문가구와 빌트인가구, 주방가구와 건자재까지, 건가구 분야의 생산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가정용가구 부문에서의 강력한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사무가구와 교육용 가구를 직접 생산하며, 정부조달 기업으로 다양한 정부기관과 공공기관, 교육기관을 위한 가구 납품과 시공을 병행하고 있다. 인아트는 엄격한 정부 정책과 기준에 맞춘 친환경 가구 공정을 지켜가고 있으며, 공정효율화와 친환경제품개발을 통해 우수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지켜나가는 조달납품기업이다. 인아트는 수많은 품질인증과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제조라인을 보유하여 직접 생산하며, 맞춤형 제품 개발을 통해 믿을 수 있는 품질의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현재 인아트는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 교육기관, 도서관 등 다양한 공간 맞춤형 주문제작 가구를 활발히 납품하고 있으며, 매년 높은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인아트는 국내외 다양한 현장에서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 자재 및 가구, 기획부터 PM까지, 전문 영역 간 시너지를 바탕으로 보다 진일보한 공간을 완성하고 있다. 아파트와 주거, 호스피탈리티(FF&E)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경계를 넘어선 차별화된 공간 솔루션 제공하고 있다.
원목의 세련되고 심플한 디자인, 내구성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인아트, 이제 기능성과 심미성을 겸비한 가구로 특판 시장에서 한 번 더 폭풍 성장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가구시장에도 반짝 유행하는 아이템들이 즐비하다. 한 대표는 원목이라는 친환경 소재로 방향키를 선회하지 않고 뚝심 있게 인아트를 이끌고 있다.
리빙디자인연구소 설립은 인아트를 한 층 더 성장시키면서 2008년 말레이시아 가구 박람회 한국 최초 디자인 어워드 수상, 2010년 싱가포르 가구 박람회 특별상 수상, 아시아 가구리더십 어워드 한국 대표 기업 선정 등 세계적으로 디자인력을 인정받았다. 영국, 미국, 일본 대표 디자이너 및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글로벌 다양성도 갖췄다.
한 대표는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다. 2014년 지역아동센터, 그룹홈에 1억 8000만 원 상당의 가구를 지원하기로 한 대전 유성구와 협약을 시작으로 매년 대전, 계룡, 논산의 지역 아동 센터와 복지시설 등에 해마다 가구를 무상 지원하고 있다. 여성 기업인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8년 원목가구로 외길을 걸었던 한 대표의 행보는 죽동 푸른 잔디가 깔린 전시장이 대변하고 있다. 가구를 일상의 도구가 아닌, 삶 그 자체로 품격을 높인 한 대표의 시간이 인아트를 ‘人아트’로 원목만큼 단단하게 견인하고 있다.
(주)인아트 한경석 대표
(주)이오디자인건축 대표
2013년 6월 유망중소기업 선정, 더숲 대표 자격
2017년 7월 대전시장상 수상
2019년 대통령상 포상
2021년 여성친화기업 재선정
2022년 7월 대전지방조달청장상 수상
2024년 7월 중소벤처부장관상 수상
現 충남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자문위원(2019~)
現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특별부회장(2022~)
現 대전여성경제인협회 부회장(2022~)
現 대전시민사랑협의회 이사
現 대전시민교향악단후원회이사
現 충남대학교 캡스톤디자인 협력위원(2023~)
2023년 북대전세무서 명예민원실장
출처 : 한국시민기자협회(http://www.civilrepor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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